2016년 9월 6일 화요일

상담심리학 무의식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경험에 대해 적어보시오. 다운 - 추천문서

From : http://www.needreport.com/index.php?document_srl=326632
상담심리학 무의식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경험에 대해 적어보시오. 다운

상담심리학 무의식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경험에 대해 적어보시오.

상담심리학 무의식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경험에 대해 적어보시오.

``` 무의식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경험에 대해 적어보시오.

중학교 때 아버지의 책장에서 처음 꿈의 해석을 읽었을 때, 나는 꿈 해몽 책쯤으로 여기고 읽기 시작했다. 잡은 책이라 놓지 못하고 읽어 내려간 책의 내용 중 또래 집단이 흥미로워할 꿈의 상징성에 대한 일부분 정도였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상세한 내용이 줄줄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때때로 꿈의 해석과 같은 상황에 도달했을 때 나는 프로이드와 같은 생각을 떠올리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겨울. 나에게는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잘나가던 학생회 간부에서 취업 낙오자가 되어 있었고, 술에 찌들어 다시 보지 않아도 아쉽지 않을 것 같던 아버지가 대학 졸업을 며칠 앞두고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죽음은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 중 첫 번째는 증오의 깊은 뿌리에는 사랑과 기대의 상실이 놓여져 있다는 것과 나와 나의 가족이 생각보다 더 많이 나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연민, 후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과거에 어떤 기억이건 그리움이라는 이름이 덮어지고 나면 대상자에 대한 기억마저 아름답게 재편집된다는 사실이었다.

마지막으로 나의 무의식은 나의 슬픔을 기억하고 그 계절에 맞는 슬픔을 반복적으로 가져다 준다는 사실이었다. 그해 겨울을 제외하고 나에게 그만큼 가혹한 겨울은 다시 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 해가 바뀌어도 취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던 11월부터 아버지가 돌아가신 12월이 되면 다시금 우울감을 경험하게 되었다. 정확히는 11월부터 3월까지의 기간이었다. 그해 겨울 나의 시련은 11월 취업 낙오부터 시작되어 3월 취업이 이루어질 때 까지 이어졌기 때문인 듯 했다.

사실 마지막 세 번째를 깨닫게 된 것은 4수를 해 대학에 간 주변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였다. 지인은 4수를 해서 서울대학교에 가고, 군제대 후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28세 남성이었다. 4수를 하는 동안에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군대에 가서 갑자기 우울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내가 왜 이런가하는 고민에 빠질 무렵 달력을 보면 늘 11월 수능시험을 보는 기간 무렵이었다고 했다. 이미 목표한 바를 이루었지만 4년 동안 11월에 겪었던 극심한 스트레스가 그의 무의식에 입력되어있었고, 같은 계절이 오면 익숙한 우울감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동안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생각의 힘이라는 생각에 강력하게 지배된 적이 있었다, 생각하고, 의식하고, 의도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은 인식과 의식, 행동의 발현에 대한 의지가 생겨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생산활동에 임하는 사람들은 반복된 의식적 의도적 행동을 통해 습관적 반복을 통한 무의식적 행동이 보편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때로 인간은 이 무의식에 의해 뇌간에 기억된 익숙한 행동과 정서가 반복되기도 한다. 의식을 통한 행동이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다.

일반적으로 무의식이라 함은 각성(覺醒)되지 않은 심적 상태, 즉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자각이 없는 상태로 다시 말하면, 지각작용과 기억작용이 없는 이른바 무의적(無意的)인 의식장애의 현상 또는 상태를 말한다. 의식할 수 있는 한계를 의식역(意識)이라고 한다면, 무의식이란 곧 그 역 밑의 전반적인 심적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무의식에서 의식으로의 연속적인 이행(移行)을 상정(想定)하여, 그 사이의 온갖 중간 단계를 고찰한 것은 당초 G.W.F.라이프니츠, J.F.헤르바르트 등이다. 특히, 헤르바르트가 표상심리학(表象心理學)에서 주장한 설(說), 즉 서로 대립하다가 의식의 역 밑으로 밀려나게 된 무의식표상(無意識表象)은 그것이 소멸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의식하(意識下)에 있으면서 의식되게 대기하고 있는 것이라는 설이 S.프로이트에게 영향을 주어, 프로이트로 하여금 특이한 무의식론(無意識論)을 주장하게 하는 데 선도적 구실을 하였다.

프로이트는 심적 현상을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누고, 후자를 다시 전의식(前意識)과 본래의 무의식으로 나누었다. 무의식은 정신분석(精神分析)의 수법에 의해서 비로소 의식화할 수 있는 부분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무의식의 심적 내용은 억압된 관념 및 본능(특히 성적 본능)으로 이루어진다.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C.G.융은, 무의식 중에는 개인이 체험하고 억압한 것 외에 어느 종족집단(種族集團)이 오랜 세월을 통해 체험한 것이 누적되어 종족의 성원(成員)이 공유(共有)하게 된 무의식도 있다고 주장하고, 전자를 개인적 무의식, 후자를 집단적 무의식이라고 하였다.

프로이트는 의식과 함께 무의식이 정신의 한 부분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무의식이 의식에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먼저, 무의식은 자유로운 정신 에너지원이기 때문에 인간의 정신 활동에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다. 그리고 이 에너지원은 무의식에서 나와서 의식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의식 활동'은 무의식에 기반하는 것이 된다.

이렇게 의식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은 의식에 비해서 그 내용이 정확하게 파악되기 힘들고, 인간이 인식하지 못하지만 실제로 원하거나 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무의식이 의식으로 넘어가는 것을 억지로 막으면 문제가 일어나게 된다. 대표적으로 예를 들어, 평상시에 하는 말 실수부터 심각하게는 정신 질환까지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흐름과 의식에까지 미치는 영향을 거부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프로이트의 이론과 같이 무의식을 의식과 연관시켜서 해석한 학자로, 무의식이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이에 대해 관심이 높았던 후설(Edmund Husserl)이 있다. 프로이트와 후설이 공통적으로 전제하고 있던 것은, 의식은 무언가에 의해서 밝혀져야 하는 완전하지 못한 존재라는 점과 무의식의 확실한 존재 여부였다(배우순, 2008). 그러나 둘 사이에 여러 차이점이 존재하는데, 한 가지 예를 들면 프로이트가 무의식은 인간의 자유 의지로 인식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한 반면, 후설은 무의식이 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미리보기를 볼 수 있습니다.)

자료 (압축파일).zip

댓글 없음:

댓글 쓰기

가장 많이 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