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27일 화요일

우리나라 아동복지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외원기관의 활동에 대해 조사해보고, 이들이 우리 아동복지에 미친 영향을 다양한 각도에서 논의해 봅시다 풀이 - 레포트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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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아동복지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외원기관의 활동에 대해 조사해보고, 이들이 우리 아동복지에 미친 영향을 다양한 각도에서 논의해 봅시다 풀이

우리나라 아동복지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외원기관의 활동에 대해 조사해보고, 이들이 우리 아동복지에 미친 영향을 다양한 각도에서 논의해 봅시다

우리나라 아동복지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외원기관의 활동에 대해 조사해보고, 이들이 우리 아동복지에 미친 영향을 다양한 각도에서 논의해 봅시다

우리나라 아동복지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외원기관의 활동에 대해 조사를 하고 이들이 우리 아동복지에 미친 영향을 여러 각도에서 논하시오

- 홀트 아동복지를 중심으로

1. 서론

1)우리나라 아동복지의 발달

2. 본론

1)외원기관의 아동복지 원조 홀트 아동복지회를 중심으로

2)외원기관의 우리나라 아동복지에 미친 영향 및 여러 의견

3. 결론

1. 서론

1) 우리나라 아동복지의 발달

어린이는 우리나라의 중요한 미래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우리나라에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어른들 그리고 사회 전체가 발 벗고 나서서 도와야 한다. 현대사회로 갈 수 록 우리는 핵가족화가 진행되고, 전통적인 집안의 분위기에서 벗어나 여성의 지위 또한 높아지고, 이에 따라 가족의 형태도 많이 바뀌고 있다. 한 부모 가정이나 재혼가정과 같은 여러 형태의 가정이 생김으로써 아동에 대한 관심 또한 절실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아동에 대한 복지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아동에 대한 복지가 이루어지지 않고 다른 나라의 기관에서 도움을 받은 경우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나라의 아동복지가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알아보고 외원기관이 우리나라 아동복지에 영향을 준 점은 무엇이며 또한 다른 관점에서 보는 영향에 대한 생각을 알아보도록 하자.

우리나라의 근대로 돌아가 보면 아동복지라고 말할 수 있는 개념이 조선 시대 말에 서구로부터 도입되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서양선교사에 의해 아동보호의 방법이 전해졌는데, 수용시설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었다.

또한 우리나라는 끔찍한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많은 아이들이 길가에 내몰렸다. 그래서 아이들은 갈 곳 없이 부모를 잃고 떠돌이 신세였다. 그래서 이런 아이들을 구조하자는 목적에서 한국전쟁으로 인해 나타난 고아와 기아의 발생 등과 같은 문제에 대해 응급으로 아동을 구호한다는 차원에서 전쟁고아를 수용할 단체나 조직이 필요했고, 그로인해 민간의 복지가와 외국원조기관들에 의해 수용시설 중심의 아동보호사업이 1950년대 해방이후 급속하게 증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1950년대까지 우리나라의 아동복지는 전적인 국가의 책임이나 보다 전문화된 아동 서비스의 제공보다는 민간자원과 해외원조에 의존하여 전쟁으로 인해 나타난 안타까운 보호를 받아야할 아동을 중심으로 하는 구조적 형태로 운영되었다.

사실 전쟁물자나 무기, 군인들을 원조하는 것은 많이 알 고 있었지만 아동복지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해외원조는 새롭게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 당시 매우 힘든 상황에 처해있었고 아동복지에대한 원조는 불가피하게 받아야했다. 그 당시 아이들은 여러 해외로 입양이 보내졌고, 부모를 잃어버린 채 몇 십 년이 흘러야했다. 사실상 굶어죽는 것 보다는 원조를 받아 아이를 입양시켜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만든 것은 외원기관에 고마워해야할 일이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낯선 땅에 가서 한국인의 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게 힘들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동복지의 원조를 해준 외원기관, 그 중 대표적인 홀트 아동복지를 중심으로 알아보고 무슨 활동을 구체적으로 했는지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가져다 줬는지 알고, 다른 각도에서도 바라보도록 하자.

2. 본론

1)외원기관의 아동복지 원조 홀트 아동복지회를 중심으로

아동복지의 중요한 외원기관이었던 홀트 아동복지회에 대해 먼저 알아보자. 먼저 홀트 아동복지회의 첫 시작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에서 시작된다. 쉽게 말해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동에게 입양을 통해 새로운 가정을 찾아주고자 설립된 기관이다. 여기서 홀트는 설립자의 이름을 말한다. 해리 홀트씨는 전쟁의 고통 속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한국으로 기꺼이 와서 전쟁으로 인한 고아 8명을 입양하면서 우리나라에 대한 아동복지원조를 시작했다. 홀트씨는 우리나라 아동에 대한 입양을 위해 부인 버다 여사와 함께 모든 재산을 바칠 정도였고, 아이들이 머무를 곳을 마련하기 위하여 직접 산을 개간하고 밭을 일궜다고 한다. 또한 전쟁으로 인해 버려진 고아의 해외입양을 추구하는 사업을 실시했다. 이처럼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이들을 돌보다 숨을 거둘 정도로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전쟁으로 나타난 고아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서 아동복지의 시초를 이루었다. 1955년 해리 홀트씨가 한국 전쟁고아 8명을 입양한 것을 시작으로 사랑을 행동으로라는 홀트 아동복지회의 정신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부모 품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아동들에게 새로운 가정을 찾아주고 그 아동들이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자랄 수 있도록 우리 사회 건실한 입양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아동복지의 뿌리를 내려 현재 우리나라에 홀트 아동복지회는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 준 해리 홀트 씨의 정신을 이어받아 입양 사업뿐만 아니라 아동, 청소년, 미혼모, 장애인, 저소득계층, 다문화가정 등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웃에게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복지 전문기관으로 발전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먼저 홀트 복지회의 대표적인 활동은 입양이라고 볼 수 있다. 마음으로 낳는 자식이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으로 결정 하는 것보다는 보다 나은 입양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문기관과의 상담이 중요하다. 그래서 홀트는 국내에 아동복지 토대가 마련되기 이전인 1957년부터 국외는 물론이거니와 국내입양 또한 시행하기 시작했고 현재도 가장 많은 입양을 연결해 주는 민간 최대 전문입양상담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홀트 복지회는 현재 입양을 원하는 가정을 위해 전국에 지역사무소를 운영하며 입양 후에도 전문적인 상담과 후원을 통해서 입양가정이 행복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기관이다.

또한 홀트씨는 아동의 행복과 정서적 안정이라는 신념을 바탕으로 1965년부터 선진국아동복지시스템인 가정위탁을 도입했다. 가정위탁은 아이가 입양되기까지 잠시나마 가정에서 위탁받아 아이가 보다 나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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