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27일 화요일

여러분이 1900년의 영국이나 미국으로 간다면 자선조직협회와 인보관 중 어느 곳에서 활동하고 싶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자료 - 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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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1900년의 영국이나 미국으로 간다면 자선조직협회와 인보관 중 어느 곳에서 활동하고 싶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자료

여러분이 1900년의 영국이나 미국으로 간다면 자선조직협회와 인보관 중 어느 곳에서 활동하고 싶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분이 1900년의 영국이나 미국으로 간다면 자선조직협회와 인보관 중 어느 곳에서 활동하고 싶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분이 1900년의 영국이나 미국으로 간다면 자선조직협회와 인보관 중 어느 곳에서 활동하고 싶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만약 1900년의 영국이나 미국으로 가서, 자선 활동을 한다면 인보관에서 활동할 것 같다.

18세기 말,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문명사회는 빠르게 발전해나갔다. 그에 따라 여러 문제들도 발생했는데, 대체적으로 사회복지 관련 문제들이 크게 대두됐다. 특히 급격한 사회조직에 변화가 이런 문제들의 발생에 크게 한몫했다. 그렇다면 그 당시에는 어떻게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했을까

사실 이런 사회적인 문제는 아주 오래전 고대시절부터 존재해왔다. 문명사회를 이룩함과 동시에 빈곤이라는 사회적 문제는 발생했고, 이런 빈곤의 문제의 해결에는 종교가 개입했다. (특히 서구 기독교)기독교에서는 이웃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기도 하며 빈곤 문제 해결의 어느 정도 기여했다. 그러나 빈곤 문제 해결에 있어 다분히 종교적 구제의 목적으로 접근한 이런 방식은 기독교 권위의 추락과 함께 한계를 보였다.

특히 근대 산업혁명 이후, 더 이상 중세시대의 가치들은 기존의 권위나, 위신을 갖지 못했다. 더 이상 귀족과, 농민과 같은 계급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했고 기사도와 같은 중세 시대적 가치는 구시대의 유물로 자리 잡았다. 1077년, 알프스 산 중턱에 있는 카노사 성에서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가 교황 앞에 무릎을 꿇기도 했던, 왕권보다 강했던 종교의 힘이 더 이상은 과거와 같이 사회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게 된 것이다. 산업혁명과 함께 비로소 진정한 자본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자본주의의 사회의 본격적인 시작과 함께, 빈곤의 문제는 더욱 눈에 띄었다. 사실 이전에도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법은 존재했다. 1601년,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영국 구빈제도의 기초가 되는 엘리자베스 구빈법을 제정한 바가 있다. 또한 그 이전에도 1349년 에드워드 3세가 발표한 노동자 조례가 있다.

"떠돌아다니는 많은 부랑자들은 그들이 구걸로 먹고 살 수 있는 한 일하기를 거부하며 게으름과 타락에 빠지고 때로는 절도와 기타 혐오스러운 짓을 하기도 하므로, 그들을 감옥에 넣는 고통을 주지 않고 단지 연민과 자선금품에 의해서는 그들을 일하게끔 할 수 없다. 따라서 부랑자들은 글들의 생계를 구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강제 노동을 해야 한다."

-1349년 노동자 조례

이미 이 조례에서도 빈민에 대한 종교의 무조건적인 구호 활동은 분명히 지양해야함을 밝히고 있다.

이후 빈민에 관련한 사회복지 법안은 끊임없이 시정돼왔지만, 19세기까지도 별다른 해결을 보지 못했다. 19세기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민간에서도 빈민을 위한 조직적인 사회운동을 전개해나가기 시작했다.

19세기 대표적인 사회 운동이 바로 자선 조직협회 설립과 인보관 운동이다. 세계 최초의 자선조직협회는 영국의 런던에 1869년 설립됐다. 이후 미국에서도 1877년 뉴욕 버팔로에 자선조직협회가 세워진다.

자선조직협회는 자선조직화 운동이라는 사회운동을 전개해나갔다. 그들의 자선조직화운동은 시대적 상황 극복, 빈민의 개인적 처우 개선을 목적으로 실시됐다. 그러기위해 그들은 정부의 행정적 구호활동과의 경쟁을 피하며, 여러 자선활동 기구를 조성해나갔다. 이들은 주로 빈민을 대상으로, 구제신청자에 대한 과학적이고 면밀한, 다각도적인 검토를 통해 이중 혜택과 같은 구제 중복을 피하는 등, 효율적인 구제활동을 전개해나갔다. 그들은 구제등록제를 실시하는가 하며, 여러 구제기능간의 연결고리를 만들었고, 우애방문원이라는 기구를 통해 자원봉사자를 활용해 빈곤가정방문 활동도 했다.

다만 이들의 이런 각종 구제 활동은 꽤나 제한적이었으며, 대상 심사에 있어 매우 엄격했다. 특히 이들은 도덕성을 매우 중시했다.

우애방문원 소속의 우애방문자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사람들은 빈민 구제의 원조를 주로 담당했는데, 빈곤 문제의 근본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렸다. 빈곤의 문제 원인을 무엇보다 개인의 도덕성의 초점을 맞추어 해결하려했다. 원인을 개인의 도덕성에 맞추다보니, 해결 방식 역시 도덕성을 고치는 것에 집중됐다. 오늘날의 수많은 사회복지사들과 역할에 있어 비슷한 모습을 보이지만, 해결 방식에서는 매우 상이하다.

이렇게 엄격한 도덕성을 빈곤의 문제에 적용한 까닭에 일할 능력이 있는 거지, 범죄자, 알콜중독자, 창녀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도움을 제공하지 않았다. 개인의 도덕적 의무와 책임을 크게 강조한 탓에, 사회 곳곳에 그들의 활동이 뻗지는 못했다.

반면 인보관 운동은 지역 사회에 그 기반을 두고 활동을 했다. 자선조직협회가 범세계적인 운동으로 영역을 넓혀갔다면, 인보관 운동은 좀 더 지역 사회에 문제 해결에 집중했다. 그렇다보니 활동에 있어서 적극적이었으며, 조금 더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과 밀접하게 닿아있다.

인보관 운동의 취지는 빈민과 함께 거주, 생활하면서 주변 환경의 개선, 빈민의 도덕적 교화, 교육 등에 힘을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보관 운동에 참여하게 되면 참여자들은 주거 환경의 개선, 공중 보건 향상, 고용주에 의한 빈민 착취, 경제적 억압과 같은 피고용주를 향한 부당한 처사를 방지 및 해결하는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므로 인보관은 지금의 지역사복지관의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다. 지역 사회복지의 역사적 기원이 되는 구빈법 이래로, 영국은 지역사회복지에 대한 법제화를 꾸준히 고민해왔고, 이런 갖은 사회운동들을 만들었다.

인보관 운동은 본래 1867년 기독교 사회주의자인 에드워드 데니슨 목사에 의하여 시도됐다. 즉, 이런 사회운동에는 기존의 종교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과는 조금 궤를 달리하지만, 종교인들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에드워드 데니슨 목사는 영국 런던의 빈민지역에서 번번히 발생하는 질병, 범죄, 무지, 비위생적 환경, 빈곤과 같은 문제들을 단순히 경제적인 관점으로만 접근하지 않았다.

이런 문제들을 교육적, 문화적 관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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