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자료 풍태후를 읽고나서 자료 독후감 자료 풍태후를 읽고나서[독후감]풍태후를 읽고나서풍태후를 읽고나서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요즘 여성들 앞에서 이런 말을 했다가는 몰매 맞기 십상이다. 중국 역사에서 단 하나뿐인 여제인 측천무후 앞에서 이 말을 했다가는 맞기는 커녕 그 자리에서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또한 중국역사에서 측천무후에 버금가는 여성권력을 자랑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녀가 곧 풍태후 즉, 문명태후이다. 문명태후는 그 정치적 능력 면에서 볼 때 어떤 남성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권모술수에서 뿐만 아니라 균전제삼장제 실시 등 굵직굵직한 개혁정치를 주도하였던 권력의 핵심으로서 죽을 때까지 조금의 권력 누수도 허락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원래 권력이나 돈이라는 것은 한 번 쥐게 되면 그것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법이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그렇듯 돈 때문에 자기 부모까지 헤치는 사람들까지 있고 역사에서도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살육하는 행위를 자주 접한다. 문명태후 또한 그렇다. 남편의 죽음 앞에 불 속으로 스스로 몸을 던지려던 가녀린 성품의 여인이었던 문명태후가 권력의 맛을 보고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과제를 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중국 중세는 호한체제로서 유목민족의 풍습, 민족성에 관한 내용이 상당히 많이 나오고 있다. 그 중의 하나는 남자가 바지를 착용하게 된 것이 유목민족의 영향이라는 것이다. 고대 중국인의 복식은 남녀 불문하고 치마를 입었다는 것이다. 선뜻 이말을 읽어서는 공감이 안 되지만 또 다른 쪽으로 생각해서 스코틀랜드의 남자들 전통 복장이 치마였던 것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유목민족은 말을 타고 다녔기 때문에 치마를 입고 말을 타면 가랑이 부분의 피부가 말 등과 직접 마찰되어 상처가 생기게 마련이다. 이런 풍습외에 유목민족은 원래 여권이 강한 것이 특색이다. 유목민족의 경우 가축을 치고 젖을 짜는 등 그들의 주업에서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생산성이 전혀 뒤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가정 내에서의 권한도 남자 못지않았다. 이러다 보니 유목민족이 세운 5호 16국 북조시대는 물론 유목국가의 계통을 이은 수당나라에서도 여자들의 활약상이 중국의 여타 다른 왕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두드러졌던 것이다. 북위 태조 도무제도 처음 등극했을 때 모후 하씨의 힘으로 초창기의 어려움을 벗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북위가 유목국가에서 중원국가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고 시급했던 과제는 바로 전제왕권의 확립이었다. 여기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 것이 다름 아닌 여자들의 정치개입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실시된 정책 중에 하나가 자귀모사제도 였는데 이 제도는 정말 여자들을 상당히 발끈하게 만드는 제도였다. 즉 황제의 아들 중 한사람이 황태자가 되면 그를 낳은 생모를 죽이는 제도인데, 이는 모후 혹은 그를 배출한 외척세력의 정치개입을 차단하려는 북위 황실의 의지가 얼마나 단호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황제를 낳은 모후가 자귀모사 제도의 희생물로 없어지더라도 황제에게는 여러 여자가 있었을 것이고 그들은 어머니와 할머니 자격으로 정치에 관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북위시대 남자 황제들을 가장 공포로 떨게 만들었던 문성제의 후인 문명황후 풍씨이다. 문명황후는 문성제가 일곱 아들을 두었지만, 그녀는 한명의 아들도 낳지 못해 오히려 생명을 보전했다가 정권을 휘두른 여인이다. 문명태후는 남편인 문성제가 죽었을 때 앞에서 언급했듯이 불 속에 몸을 던져 따라 죽으려고 했다. 문명도 한때 그런 시절이 있었던 여자였다. 그런 여인이 어떻게 권력 앞에서는 그렇게 변했는지 의문이 가지만 그 당시 태후의 나이가 24세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24세에 남편을 잃고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남편의 죽음으로 12세의 헌문제가 즉위하자, 헌문제의 생모는 당연히 자귀모사 제도에 의해 죽었다. 황태후 풍씨는 태후의 자격으로 자연스럽게 정치에 발을 내디디게 된다. 그녀는 효문제가 태어나자 잠시 물러났지만 조정 요직 곳곳에 자신의 지지자들을 심어 놓았다. 헌문제와 태후의 정치적 긴장 관계가 잠시 평온을 되찾는 동안 헌문제는 태후의 情夫인 이혁을 주살하는 사건을 일으켰고 이는 곧 태후가 다시 권력무대에 나서는 계기가 되었다. 헌문제는 곧 퇴위되었고 태후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후 문명태후는 5살의 효문제를 즉위시키고 집정을 했고 효문제는 명목상 황제였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허수아비였을 뿐이었다. 북위의 효문제 하면 떠오르는 것이 균전제와 삼장제 등의 개혁정책일 것이다. 그러나 효문제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문명태후가 한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황제로서 효문제는 문명태후에게 지극한 효성을 드린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그것은 그가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고 단시 생명을 보전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가 만약 이런 수수방관의 자세를 취하지 않고 그의 할머니가 하는 정치행위에 대해 왈가왈부했더라면 죽음을 당하거나 제위에서 쫓겨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과연 권력이라는 것이 무엇이길래 사람을 이토록 변하게 만드는 것인가 국회의원 선거할 때마다 선거공약을 내세우던 초심은 어디로 가고 비리를 일삼고 당적을 바꾸고 것을 보면 도무지 권력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가 없다. 아마도 내가 그 권력을 손에 쥐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문명태후와 같이 권력욕이 높은 자가 우리나라에 있었더라면 여성대통령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 앞에서 아주 쉽게 사람이 변해가는 것을 보면 만약 지금의 사회가 남성위주의 사회가 아니라 여성 상위 시대가 되어서 여성 대통령을 비롯하여 다수의 여성 국회의원들이 정치를 하여도 지금의 어지러운 정치상황처럼 비리가 난무할 것을 뻔 할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예전의 박정희 대통령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니 웃음이 절로 나올뿐이다.
2016년 6월 5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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