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27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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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자료실 한글 책을 읽고

[독후감]한글 책을 읽고

한글 책을 읽고

한글이란 글은 과학적이고도 정밀한 글자인 것은 수없이 들어왔지만 그 이유를 몰랐었다. 단지, 한글이 표음문자라서 창제원리가 과학적이기 때문에 한글이 우수하다고만 들어왔어 서, 나는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지금 세계화 시대에 한글만을 고수해서 지구촌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 한글이 어떠한 면에서 더욱이 우수한 점이 뚜렷이 나타나는가에 내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다. 또한 한글의 우수성을 이 책에서는 근거를 들어 설명해 주었다. 그러면서 나는 필자가 말한 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명제, 주장을 세 가지로 나누고 또 그에 대해 생각하면서 보았다.

한글이 우수한 첫째의 이유가 한글은 '신속성'이 중요해진 세계화의 시대에서 적당한 글자라는 점이다. 필자의 말을 인용하자면 "한글의 기자들은, 바로바로 타이핑 한 뒤 기사를 만든다." 고 하였다. 여기에 나는 뒤에 나올 '모아쓰기'라는 것을 붙여서 생각해보았다. 자음과 모음을 합쳐 가장 짧은 알파벳을 만들어도 다른 나라에서는 최소 2글자가 이루어져야 발음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선 어떤 알파벳을 합쳐도 한 글자로 발음이 되기 때문에, 잘못 썼다가 지우는 시간도, 프린트를 출력할 때의 속도도 훨씬 경제적으로 절약할 수 있다고 덧붙여 생각했다.

둘째의 이유는 "한글은 불과 24개의 알파벳으로 세상의 모든 언어를 음성적으로 표기 할 수 있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의 예로는 "휴대폰이나 컴퓨터 자판에도 개수가 꼭 들어맞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일본어와 같이 변형하는 것 없이 편리하게 쓸 수 있다." 라고 하지만, 나는 여기서 내가 예전에 봤던 "휘파람 부는 소리를 발음 나는 대로 적으면 각 나라에서는 어떻게 적을 것인가"에 대해 실험한 적이 있는 영상물에서 놀라운 점을 하나 발견했다.

영어로 휘파람 부는 소리를 나타내면 "w-w-w"로 대강 적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한글로는 "익", "휘익", "휘이익"과 같이 무궁무진하게 표현 할 수 있는 점에 대해 글자표현의 풍부함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다른 예로 "달콤하다"를 영어로 나타내면 "sweet"뿐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달착지근하다", "달달하다" 등으로 표기 할 수 있었다. 나는 이점을 포함시켜 보았었더니, 더욱 나 자신을 설득하기 위한 주장이 완고해졌다.

셋째의 이유는 "한글은 간결하고 쉽게 알아볼 수 있고, 또 예쁘게 적을 수 있다"는 점이다. "가로로 보든 세로로 보든 거꾸로 하여도 한글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의 장점을 살린 책등 인쇄는 한글이 편리하고 우수할 뿐만 아니라 심적, 미적으로도 충분히 뛰어나다는 것을 뒷받침하여서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문장부호와 섞어놓아도 조화를 이룬다는 점도 있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서 100명의 일반인을 모아놓고 "반짝반짝★" 이나 "cute★"를 보았을 때, 반드시 전자의 것이 더욱 보기 좋다고 택할 것이라는 추측은, 꼭 들어맞을 추측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즉 꼭 한글이 예쁘다고 택할 리가 없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는 '한글은 영어에 비해 균형감이 살아있다.' 고 해주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은 무궁무진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한글은 언제 만들어졌었던 것일까, 그 정답은 옛 15세기 무렵이다. 다른 나라와 달리 글자의 역사가 짧지만, 그 어떤 나라보다도 과학적인 글자인 한글을 바로 세종대왕께서 만드셨었다. 나는 오로지 백성을 일깨우기 위해 연구하신 세종의 노고에 머리가 숙여졌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한글창제에 반대하던 신하가 많았다고 한다. "우리 조선은 조종 때부터 내려오면서 지성스레 대국(중국)을 섬겨 중화의 제도를 준행하고, (중략) 아무리 전문을 모방 하였던 지라도, 모두 옛것에 반대되오니 실로 근거가 없사옵니다." 라는 최만리의 상소가 가장 대표적이었다. 현대인의 대부분이 최만리를 악역으로 내몰게 되는데, 우리는 여기서 꼭 최만리를 탓할 수 없다. 그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보자면, 한자를 멀리하고 한글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중국을 멀리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조선의 안정은 풍전등화의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점이며, 여태껏 써온 문자를 하루아침에 바꾼다는 것은, 정치, 경제, 문화 가 혼란해질 수 있을 우려가 있었던 점을 고려해보면, 최만리의 반대는 결코 옳지 않은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세종이 친히 최만리를 설득하기 위해 펴낸 "병용론"도 단번에 뿌리치는 것을 보아 최만리가 왕에게 큰 결례를 하며, 왕의 노고를 무시한 것 같아, 조금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종은 내가 느꼈던 무례보다도 더 크게 느껴졌을 텐데, 한글창제를 문제로 한 "정치토론"을 열어서, 계속해서 최만리를 설득하였다. 하지만, 곧은 최만리는 한글을 계속 멀리하게 되자, 세종은 결국 약식처결로 마무리를 짓고, 1444년 한글을 창제하게 된 것이다. 이점에서 우리는 또한 세종의 어진 마음씨와 위대함을 한 번 더 엿볼 수 있다. 세종은 무조건 '왕권'이란 서슬 퍼런 칼을 지니고서 휘두른 것이 아니라, 나라를 올바른 길로 가기위해 썼다는 점이 무엇보다 존경스러운 점이었다. 이러하기 때문에 이후에 세계 유네스코 문맹퇴치에서 큰 공로를 세운 사람에게 세종대왕이라는 이름으로 상을 수여하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고 또 외국이 세종대왕의 위대함을 알아주었다는 것에 감격을 받았다.

이렇게 어렵사리 창제한 한글은 우리 민족의 얼이요, 자긍심의 원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글의 우수성은 겹침 없이 늘어놓아도 무궁무진하며 끝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수한 한글을 외국에서 봇물처럼 쏟아 들어오는 글자를 아무런 생각 없이 수용하는 것은 우리가 그 우수한 한글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또 독도 영유권으로 일본과 대립하며 독도를 세계에 알리고, 지키자는 운동은 많이 일어나고 있다만, 한글을 지키고 알리는 운동은 독도문제보다 더 소극적이어서 조금 섭섭하였다.

우리나라를 무궁화 잎에 비유하자면 말은 무궁화의 뿌리라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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