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12일 금요일

일주일은 칠일을 읽고나서(3) 보고서 - 무료서식자료실

From : http://www.needreport.com/index.php?document_srl=319704
일주일은 칠일을 읽고나서(3) 보고서

일주일은 칠일을 읽고나서(3)

일주일은 칠일을 읽고나서(3)

일주일은 칠일을 읽고나서

섬에 들어갔던 날을 기억한다. 멀리 오르막길에서 할머니가 이마에 대야를 이고 오는 모습부터 내 기억은 시작된다. 그 오르막길을 「일주일은 칠 일」이 다시 올라가게 했다. 여기에 나오는 여자 아이와 나는 아주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어렷을 때 집안 사정으로 3년여 시간을 할머니가 사는 완도에 맡겨졌었다. 그 때 맡겨질 때에도 짧으면 일주일, 길면 한 달에 돌아오겠다는 부모님이 약속을 했었다. 대여섯살 쯤의 내가 그 시간을 어떻게 느끼고, 이해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엄마가 말했던 시간을 훨씬 넘겨서야 섬에서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소설은 아이가 섬에 오면서 부터 시작된다. 아빠가 돌아가자 엄마는 딸을 할머니의 집에 맡겨 놓는다. 일주일이면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엄마는 떠나고, 여자 아이는 그 약속을 믿고 기다린다. 그 와 중에 섬으로 엄마를 잡으러 경찰이 오고, 경찰은 엄마가 돌아올 것이라며 아이를 섬 밖으로 나가게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고, 그럼에도 아이는 엄마를 계속 해서 기다린다.

일주일이라는 기간은 내게 참 길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부엌으로 들어가 비닐봉지에 내 짐을 쌓았다. 그리고 부두로 나가 배가 들어오기를, 배가 들어오면 그 배중에 익숙한 모습이 있기를 기다렸다. 그게 섬에서의 하루 일과라고 해도 좋을만큼 나는 언제나 바다 앞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게 중요했던 건 일주일이 칠 일이라는 것보다, 그 칠 일이 어느 정도의 시간이냐는 것보다, 그것을 넘겼다는 사실 보다 꼭 돌아오겠다는 `약속`이었던 것 같다.

소설에서 여자 아이는 일주일은 `아빠가 땅 속에 묻힌 기간`으로 설명할 수 있다. 세상에는 많은 단위가 있는데, 아이에게 시간을 재는 단위는 아빠가 땅 속에 묻힌 기간인 것이다. 어른들은 시간을 숫자로 잰다. 그 숫자를 60으로 계속해서 쪼갠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의 시간은 쪼개지는 게 아니다. 아빠가 땅 속에 묻힌 기간이 일주일이 된 것처럼, 이 여자 아이에게는 이제 엄마가 돌아오는 시간이 일주일인 것이다.

이 소설은 엄마가 돌아오지 않고, 여자 아이가 엄마를 계속 기다리고 있는 내용으로 끝나지만, 나의 시간에서는 엄마가 돌아왔다. 엄마가 돌아왔던 그 날에도 나는 짐을 쌓아놓았었다. 그 짐을 가지고 섬을 나온지 벌써 11년이 흘렀다. 하지만 나는 가끔씩 아직도 내가 섬에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아직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다. 섬에 갈 때도 그랬고, 섬을 나올 때도 내 의지로 선택한 게 없었기 때문에 나는 아주 오랜 시간 무기력감에 시달렸다. 내가 섬에서 아직도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말은 그 일주일이 채워지지 않았다는 말과 같다. 내게 일주일이라는 단위는 너무나 길었다. 더군다나 나는 오히려 집에 돌아와 섬을 추억했다. 내가 무언가를 선택하지 않으면 내가 있는 곳은 어디든 섬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이 안에서의 일주일은 절대 채워지지 않는 무한한 단위라는 것도.

이제 나는 `여자 아이`도 아니고, 사회에서 성인으로 인정해주는 나이에 하루 하루 더 가까워지고 있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나는 내 안에 있던 여러가지 문제들과 마주쳤다. 도망치기도 했고 맞서기도 했고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괴로워 하기도 했다. 그러한 모든 방식들이 일주일를 채우는 단위들이었다. 나는 더이상 엄마가 엄마이기 때문에, 아빠가 아빠이기 때문이라는 말로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모성애나 부성애, 부모이기 때문에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통념들도 하나씩 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확인하게 될 때마다 나는 자주 가족과 부딪혀야만 했다. 이보다 더 어릴 때는 그런 갈등으로 일어날 상처가 무서웠다. 엄마는 내가 집에 없는 걸 특히 무서워 했다. 어릴 때 키우지 못한 게 한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 엄마 딸이 아니라고 했고, 나는 그런 엄마 밑에서 엄마 딸이 되기 위해선 어떠한 것을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부딪히기 싫었고, 내 선택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자료 (압축파일).zip

댓글 없음:

댓글 쓰기

가장 많이 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