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12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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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빨래를 보고나서(3) 레포트

뮤지컬 빨래를 보고나서(3)

뮤지컬 빨래를 보고나서(3)

뮤지컬 빨래를 보고나서

멀리 보이는 서울 하늘의 해 질 녘, 옥상 위에 가지런히 널려 바람에 쉴 새 없이 흔들리는 빨래들, 낡고 허름한 교회, 빙글빙글 돌아가는 미용실의 간판과 서로 엉켜 서 있는 전봇대들. 우리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허름한 뒷골목의 풍경이 이 뮤지컬의 무대 배경이다. 무대의 배경만으로도 우리는 이 뮤지컬이 우리와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 집의 빨래를 보면 그 집안의 속사정이 훤히 보인다.'라는 할머니의 말이 마음에 짠하게 와 닿는다.

할머니는 극의 주인공 나영과 희정엄마가 사는 집의 주인이다. 서울 살이 45년째인 이 욕쟁이 할매가 오늘도 억척스럽게 박스를 주워 모으고, 세탁기 살 돈이 아까워 찬물에 빨래를 하는 이유는 빨랫줄 위에서 나부끼고 있는 아픈 딸의 기저귀 때문이다. 할머니는 오늘도 아픈 딸의 기저귀를 빨래하며 얼룩 같은 눈물을 훔쳐낸다.

강원도 강릉 연곡면에서 서울의 가난한 동네로 이사 와 몇 년째 서울 살이 중인 나영은 서점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내가 그녀의 고향을 이렇게나 상세히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나의 고향이 강릉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뮤지컬을 보는 내내 고향에 대한 향수로 인해 나영에게 동질감마저 느껴졌다. 분명 서울로 상경할 때에는 부푼 꿈을 안고 왔겠지만 지금 그녀의 모습은 꿈을 찾기에는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버거워 보인다.

하지만 힘든 상황 속에서도 사랑은 언제나 어떤 모습으로든지 다가온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 노동자 솔롱고와 나영은 옥상에서 빨래를 널다가 만나게 된다. 서로에게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는 순수한 솔롱고와 나영의 사랑의 줄다리기도 극의 재미를 더해준다. 사랑도 빠른 것만을 추구하는 세상이기 때문일까. 그들이 서로에게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모습이 너무나도 예뻐 보였다.

그러나 우리네 인생이 그렇듯 그들의 사랑도 순탄치만은 않다. 외국인 노동자인 솔롱고는 악덕 고용주의 폭력과 협박 속에서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지만 임금도 받지 못하고 쫓겨난다.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들은 욕부터 배우게 된다는 극 중 인물의 대사를 웃어넘길 수만은 없었다. 주인집 남자에게 이유 없이 맞아도, 공장에서 4개월 치의 임금을 못 받고 쫓겨나도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 그들의 이야기가 내게 너무 아프게 다가왔다. 마주하기 불편한 진실들이 극의 곳곳에 있지만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다. 그들의 문제이자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따뜻하고 넉넉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 눈에 나영의 속옷사이즈를 정확히 알아맞히는 동대문 속옷장수 희정엄마, 미어터지기 직전의 만원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 아줌마, 먹고 살기 위해 오늘도 사장의 눈치를 봐야 하는 직장인, 외상값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는 동네 구멍가게 주인아저씨의 모습도 우리네 삶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와 비정규직 부당해고, 88만 원 세대와 청년실업 등 사회적 문제들을 극의 재미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이야기한 것도 탄탄한 줄거리의 바탕이 된다. 슬프고 무겁기만 할 법한 이야기들을 감동적이고 훈훈하게,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풀어낸 것도 '빨래'만의 큰 장점이다. 주인공과 감초 같은 조연들의 노래와 연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솔롱고의 순수하고 멋있는 모습에 극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부작용에 빠질 수도 있으니 그건 주의하자.

각자의 삶의 애환을 안고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꼭 우리들의 모습과 닮아있다. 마지막에 상처와 아픔쯤은 빨래로 모두 털어버릴 수 있다고, 나는 지치지 않을 거라고 외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사실 나는 이기적이게도 나만 힘든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따뜻함을 느꼈다. 그래, 상처와 아픔 하나쯤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혹자의 말처럼 그걸 끌어안고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게 중요한 거지. 그 방법이 빨래든, 다른 무엇이든. 그들의 못난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봤기 때문일까. 그들을, 그리고 나를 응원하고 싶어졌다. 그들의 삶이 앞으로 얼마나 더 나아질지는 모른다. 앞으로도 여전히 그네들의 삶은 그들을 무겁게 짓누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과 우리가 오늘을 살아낼 수 있는 이유는 의지할 수 있는 나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 지친 하루의 끝에서 날 반겨주는 이가 있기에, 이유 따윈 묻지 않고 어깨를 내어줄 수 있는 이가 있기에,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며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걷는 길이기에. 뮤지컬이 끝났지만 쉽사리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문득 나에게도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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