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12일 금요일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고나서(3) 업로드 - 예비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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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고나서(3)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고나서(3)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고나서

이 책을 본 순간 바로 든 생각이 '아.. 칙칙하다.'였다. 표지가 눅눅한 녹색으로 되어 있는 것이 참 재미없어 보였다. 벌레 씹은 표정을 하곤 책장을 넘겨보니 역사 공부할 때 나올 법한 한자로 된 글들이 쭉 이어졌다. 사진 밑에 설명을 읽어보니 다산, 다산, 다산 또 다산. 귀에 착착 감기는 게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 재빨리 표지로 돌아가 보니 정약용 지음. 마침 며칠 전 국어시간에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쓴 글인 '수오재기'를 배웠다. 상당히 어려운 글이었는데.. 정약용이 유배를 간 적이 있으니 글 내용은 제목 그대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인가 보다. 목록을 보니 백 개가 훌쩍 넘는 편지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공감되었고 인상 깊었던 몇 가지 편지와 이에 대한 내 의견을 써보려 한다.

첫째, 필자는 '청운의 뜻을 꺾어서는 안 된다'며 매사에 '용기'가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그에 따른 롤모델을 한명 정해놓고 이 사람이 하는 일을 내가 왜 못하는가 라고 생각하고 그 수준에 오르도록 노력하는 것이 용기라는 것이다. 간단해보이지만 이것만큼 머리 아픈 문제가 없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바뀌는 것이 꿈이고, 알면 알수록 여러 가지 장애요소들, 힘든 점, 현실적인 요소들이 보이고 주위 사람들의 시선들, 들려오는 소리들에 의해 좌절될 수 있는 것이 꿈이다. 난 이런 식으로 결국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사람들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다. 무엇을 하고자 하는 욕구, 즉 꿈이 없다. 물론 누가 말하면 대답해주는 직업들은 있다. 하지만 내가 정말 원하고 그것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입꼬리가 올라가는 열정이 없어, 꿈과 현실과의 갈등조차 생길 수 없다. 물론 누구보다 끊임없이 많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나중에 무엇을 할까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야 할까 행복이 뭘까 공부는 왜 하는 걸까 대학을 가면 무엇을 해야 하나 꼭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가 내 가치관도 나중에 보면 편협했었다고 여겨지지 않을까 한도 끝도 없다. 나중에는 스스로와 타협을 했다. 우선 내게 남은 시간은 1년 반. 여태까지 살아온 시간이 매몰비용임을 생각해보아도 내가 원하는 인생의 전체적인 틀에 현재로써는 공부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아주 씁쓸한 결론이었다. 중학교 때 잠시 디자인을 하고 싶다고 부르짖었다. 뭔가 창의적이고 멋져 보였다. 나중에 이러한 내 관심이 단지 디자이너란 직업이 자유롭고 조금만 끄적이면 돈도 쉽게 벌 것 같다는 나의 잘못된 추측, 그리고 편하게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나의 욕구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현재 불타오르는 열정까지는 아니어도 상당히 관심이 가는 직업이 있는데 바로 CEO 다. 폭넓고 깊은 여러 가지 지식들, 특히 경영지식과 능력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들과 얽히고 설키며 논리력과 사회성, 그리고 카리스마를 필요로 하는 직업으로 정말 해보고 싶다. 롤모델은 5년전 돌아가신, 기업회장 이셨던 할아버지 민용기(공교롭게도 용기)로 삼았다. 할아버지는 포스가 남다르셨다. 말 그대로 위풍당당하셨다. 서울대 화학과를 나오셔서 연구하시다가 때려 치시고 경영을 배우셔서 회장이 되신걸 보니 필자가 강조하는 '넘어져도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와도 맞는다. 더 이상의 설명은 안하기로 하고 책 뒷부분에 필자가 제자에게 농업 경영을 가르쳐주는 부분이 있는데 내가 쓰고자 하는 논지와 동떨어져 이 또한 생략 하겠다.

둘째, '넘어져도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이다. 이 말이 더욱 와 닿는 이유는 필자의

과거에서 찾을 수 있다. 정약용은 누가 보아도 뛰어난 인재였다. 천주교 문제가 터지기 전까지 정조의 측근으로 있으면서 그의 관료생활은 탄탄했다. 갑자기 귀양을 가 18년 동안 초목에 묻혀 살게 된 잘나가던 관료가 편지에다가 이런 말은 써 넣었다는게 정말 대단하다. 누구든 억울한 일을 당하면 흔들리기 마련인데 필자는 더 나아가서 나중에는 '폐족은 백배 더 노력해야한다.' 라고 자식들에게 벼슬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해서 학문을 소홀히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셋째, '비밀로 하는 일이 없기를.'이다. 남이 알지 못하게 하려거든 그 일을 하지 말고, 남이 듣지 못하게 하려면 그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제일이라는 필자의 말해 전적으로 동의한다. 누구나 비밀을 갖고 있다. 그 비밀이 자기만의 것이라면 상관 없지만 남과 관련되어 있거나 심지어 알려지면 큰 파장을 불러올 만한 내용의 비밀이라면 애초에 만들지를 말아야 한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 썩고 곪아서 나중에 발견되면 아주 곤란해 질 수 있다. 똑같은 일이라도 비밀로 갖고 있던 일이라면 더욱 크게 느껴지는 법이다. 필자의 이와 같은 생각은 '거짓말을 입 밖에 내지 말라.'로 이어진다. 비밀을 지키려고 하면 대게 거짓말을 하게 되는데 이를 하게 되는 순간 그 사람의 가치는 뚝 떨어지게 된다. 아무도 몰라도 자신만은 알지 않는가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아주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효, 제, 자'이다. 나에게는 특히 '제' 가 필요한데 형은 우애하고 아우는 공손해야 한다는, 결국 바람직한 형제 관계에 대한 것이다. 동생은 최근 2년간 문제가 아주 많았다. 독후감에 쓰면 나중에 혹시 동생에게 해가 갈까봐 쓰지 못하는 내용도 많다. 확실한 것은 누가 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난 중3이 끝나갈 무렵에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하게 되는데 동생이 이때부터 대내, 대외적으로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동생과의 정신신체적 충돌이 잦아졌는데 저러다 정말 큰일 나겠다고 이웃이 신고를 할 정도였다. 아무리 화가 나도 주먹을 휘두르면 안 된다는 걸 알았지만 나에게도 심적 여유가 없었다. 올해 들어 동생의 말썽은 더욱 심해졌다. 그러나 동생과의 마찰은 줄었다. 서로의 생활을 인정해 준 것이다. 난 동생의 극심한 사춘기를, 동생은 나의 민감한 수험생 처지를 이해해주고 배려해주었다. 그래도 아직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는데 조만간 24살인 친한 사촌형과 나와 동생 셋이서 동생 문제에 관해 얘기하기로 했다.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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