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12일 금요일

유일한 평전을 읽고나서(3) Down - 대학교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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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평전을 읽고나서(3) Down

유일한 평전을 읽고나서(3)

유일한 평전을 읽고나서(3)

유일한 평전을 읽고나서

"유일한 평전" 이라는 책을 처음 도서관에서 대여 하고 보기 시작 하였을 때가 되서야 나는 유일한 평전이 하나뿐인 평전이라는 의미가 아닌 유한양행을 만드신 유일한씨의 평전을 말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나는 내 후배들에게 하였지만 후배들은 이미 한국에서 기업가 정신에 입각하여 깨끗한 경영을 하신 분으로서 유일한씨를 모두 알고 있었고 나는 비웃음 당하였다. 이에 나는 나에게 이런 굴욕이라면 굴욕을 안겨준 유일한씨에 인생에 대해 알기 위해서 더욱 악착같이 책을 읽는 것에 매진하였다. 하지만 내가 그의 인생을 책을 통한 간접 체험을 통하여서 접하면 접할수록 그동안 그를 몰라 왔던 나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반성하게 되었다.

"정성껏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 봉사하고, 정직 성실하고 양심적인 인재를 양성 배출하며, 기업 이익은 계속 기업을 키워 일자리를 만들고, 정직하게 납세하며, 그리고 남은 것은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한다." 기업인이자, 독립운동가, 교육가로서 이 땅에 민족기업을 일으켜 불후의 신화를 창조한 유한양행의 유일한 회장의 기업철학이며 신조이다. 그는 존경받는 기업인이었다. 평양출생인 그는 9세에 선교사를 따라 미국 유학길에 올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미시건 대학교까지 졸업하였다. 그 후 유한양행을 설립하여 근면과 성실과 책임감에 솔선수범하는 존경받는 기업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독립 운동가였다. 미국에서 항일무장독립군인 맹호군을 창설하는 데 주동적인 역할을 하였고, 재미 독립 운동가들과 연계하여 광복을 맞을 때까지 크게 활약하였다. 이와 같은 그의 애국애족의 열정은 유한양행을 민족의 기업으로 세우는 정신적 근간이 되었다. 또한 그는 교육가였다.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좋은 인재를 양성하려는 목적으로 사재를 헌납하여 유한학원을 설립하였다. 그 시기의 유한공업고등학교가 지금은 유한대학으로 발전하였다.

이렇듯 유일한씨의 모범적인 생애와 업적을 통해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과 실천해야 할 부분을 책으로나마 간접체험을 할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지금부터 그의 삶을 잠시 훑어보면, 가장 먼저 유일한씨의 평전임에도 불구하고 앞부분에서 큰 역할을 차지하는 유일한의 아버지 유기연은 책에서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유일한의 인생방향을 결정적으로 바꾸고 새로운 세계로 열어주는 '키'역할을 했다. 그는 일찍이 고아가 된 후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아갔고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은채 스물여섯 노총각이 되었다. 그리고 자립적인 삶을 살고자 평양으로 홀로 올라와 결혼을 하게 되었으며, 그의 아들이 바로 유일한씨 인 것이다.

유일한씨는 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권유로 미국으로 가 공부를 하게 되었다. 유일한의 아버지는 더 큰 세상에 있는 것을 아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유일한을 일찍이 자신의 품에서 떠나보낸 것 같다. 아마 이는 그 아버지 유기연이 자신의 삶을 토대로 그의 아들 유일한이 훌륭하게 자랄 수 있도록 초석을 다듬어 주는 부분이 라고 생각되어진다. 미국으로 가서 공부를 하겠다는 열정을 가지고 학업에 열중하였지만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여러 가지 일도 많이 하며 고생도 하였다. 힘든 일도 많고, 부모님과 고향이 그리워 울기도 하였지만 유일한이 할 수 있는 것은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뿐이었다. 유일한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학교에서 우등생을 차지하였고 클럽활동도 열심히 해 미식축구 주장까지도 하였다. 그후 그는 미국에서 기업을 일으켜 성공하였다. 유일한 박사는 당시 일본의 압제 하에 가난과 질병으로 신음하는 동포를 위해 1926년 `건강한 국민만이 잃었던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민족기업 유한양행을 창립하였다. 1936년에는 부천시 심곡동 일대에 국내최초의 근대적 제약공장을 준공하여 제약입국의 의지를 실천하였다. 또한 박사는 필라델피아 한인자유대회, 맹호군 창설 주역으로 활동하는 등 국내외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활동하였다. 이렇듯 고난과 역경의 삶을 살아 온 그의 삶은 존경 받아 마땅하다. 이는 그가 이룬 사업적 성공 때문이 아니고, 그가 행해온 삶 그 자체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부자의 길'이라고도 할 수 있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가장 잘 실천한 인물로 꼽을 수 있다. 그는 생전에 많은 연세대, 보건 장학회 등에 주식을 기증하는 등 연구 사업과 교육 사업에 아낌없는 투자를 하였으며 국가에 헌신하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유한 공고를 설립하였다. 또한 유언장에는 자신의 소유주식 전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었으며, 이외에도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하여야 한다.` 는 말에서 그의 신념을 잘 나타나 있듯이 그 당시 사회적 관념과는 다른 일들을 많이 단행하였다. 그 일환으로 일제시대에 이미 유한양행을 주식회사로 개편하였고 은퇴 후에도 사회 통념을 깨고 직계 상속이 아닌 전문경영인을 세워 물려주는 등 경영인의 올바른 윤리를 확립하여 모범을 보였다.

나는 아직 꿈을 꾸고 꿈을 향해 달려가는 20대 초반에 21살이다. 곧 군 입대를 압둔 나에게 있어서 유일한씨의 평전을 접하게 된 것은 내 인생의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아직 꿈을 꾸고 있다. 하지만 아마도 2년의 군복무를 마친 후에는 나는 꿈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을 것이다. 그때의 나의 삶에 있어서 유일한 씨의 삶에 대한 자세나 가치관은 나에게 있어서 좁게 보고 사회와 타협하는 방법이 아닌,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고 사업가 정신에 입각한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는 삶이 될 것이고, 그 모든 것을 실현하였을 때의 내 삶은 누구에게도 비난 받지 않고, 존경 받을 수 있는 삶이 될 수 있을 것 이라고 나는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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