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3일 수요일

보일에 대해서 Report - 인기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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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에 대해서 Report

보일에 대해서

보일에 대해서

Robert Boyle

(1627-1691)

`보일의 생애`

보일은 1627년 아일랜드 맨스터주 리즈모어에서 태어났다. 보일의 아버지 cork백작은 영국에서 가 장 부유한 사람이었다.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이 튼 스쿨에 다니게 된 어린 보일은 수줍음이 많고 거짓말은 절대 못하는 여린 아이었으며 굉장히 예 민하고 섬세한 아이였다. 어렸을 때부터 독서를 매우 좋아하던 보일은 평생 손에 책을 달고 살아 간다. (후에는 의사가 보일에게 `그의 지나친 독서 는 두뇌를 약하게 만들고, 충혈을 일으키며 또, 폐 를 손상시킬 수도 있다.` 라고 경고까지 할 정도로 책을 좋아했다.) 어렸을 때부터 영특한 보일은 영 어 뿐만 아니라 여러 외국어에 능했으며 11세때 가정교사와 함께 세계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보일이 14세가 되었을 때 이탈리아, 프랑스 쪽을 여행하다가 갈릴레이의 저서를 읽고 근대과학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3년 후 잉글랜드로 귀국하자마자 근대과학의 인사들과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 '자연과학은 인간생활에 유용해야한다' 라는 F.베이컨의 영향을 받게 되고 실험과학을 시작한 결정적 계기가 된다. 아버지가 보일에게 유산을 남기고 돌아가신 시기에 보일은 활발하게 과학적 재능을 펼치게 된다. 자비로 실험실을 만들어 의학과 화학을 실험하며 최초의 화학서적인《독약을 의약품으로 바꾸는 일에 관해서》를 썼다. 그 후에도 꾸준히 과학계에 몸을 담으며 여러 모임, 그룹에서 현존하는 '설'들에 대한 비판으로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보일은 그러한 '설'들을 화학적으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기 위해 입자론의 필요성을 느껴《입자철학을 설명하는 데 유용한 화학실험의 예》를 쓰고 그 이후에도 여러 가지 저서를 내며 입자철학을 전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애썼다. 그런 입자에 대한 연구를 하다가 공기 펌프를 만들어 대기 입자에 따른 공기의 탄력을 찾아내어《입자철학을 설명하는 데 유용한 화학실험의 예》를 쓰게 되고 이 책에서 유명한 '보일의 법칙'이 탄생하게 된다. 그 후 주로 불과 공기에 대해 연구를 하고 빛, 열에 대한 연구도 한다. 보일은 화학을 산업이나 의료 목적으로만 연구 하는데 그치지 않고 화학 그 자체를 과학의 하나로 연구하고 실험했다. 그가 근대화학의 첫 단추를 끼운 것이다. 여려 연구와 노력으로 보일은 왕립협회에 회장을 맡게 된다. '화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보일은 평생 독신으로 살며 하나님을 사랑한 청도교적 삶을 살았다. 그는 집안이 부유한 것에 대해 한 번도 자만하거나 방탕하게 살지 않았고 하나님이 주신 재능과 축복이라 받아들이며 값지게 사용하고자 평생 연구에 힘썼다. 보일의 조수로 있던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설명하고자 하는 책을 발간하고 싶지만 경제적 여유가 부족해 못하고 있을 때 보일이 선뜻 도와주기도 했다. 보일은 이렇게 정 넘치고 너그럽고 청렴한 마음으로 살다가 1691년 12월 30일에 생을 마감한다.

`보일의 업적`

- 보일의 법칙

일정한 온도에서 기체의 압력과 부피가 서로 반비례 한다는 법칙이다. 압력이 2배, 3배, 4 배로 커지면 부피는 1/2배, 1/3배, 1/4배로 줄 어든다. 온도가 일정할 때 부피와 압력의 곱이 PV=k로 일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상기체 일 경우는 이러한 법칙이 완벽히 적용되지만 사실 실제기체에서는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 화학의 근대화

화학을 과학에서 분리해 하나의 학문으로 정리하고 자연철학을 배척하고 실험적 결과를 중시하여 근대의 실험을 바탕으로 하는 화학을 이끌어 냈다.

입자론을 토대로 '원소는 더 이상 분해되지 않는 기본 입자이다'라는 근대적인 원소설의 기초가 되었다.

- 그 밖에도 보일은 뉴턴, 후크와 왕립 협회를 만들었고, 수은과 공기의 비중측정, 목재의 건류에서 메틸 알코올의 분리, '뉴턴의 원무늬' 현상 발견, 정성 분석의 기초 확립, '소리는 공기가 없으면 전해지지 않는다' 등등 여러 업적을 남겼다.

`나의 생각`

보일에 관련된 것들을 찾다가 보일이 책을 아주 많이 좋아했다는 글을 읽었을 때 부모님께서 어렸을 때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하시던 것이 떠올랐다. 보일이 독서를 많이 한 덕에 학식이 많이 쌓였고 연구를 잘 할 수 있었으리라 짐작이 되었다. 보일이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해외여행을 다닌 것은 정말 부러웠다. 그렇지만 나였다면 해외여행을 단지 재미와 흥미위주의 여행으로 다니진 않았을까 보일은 여행을 다니며 견문을 넓혔고 어린 나이지만 본인이 앞으로 더 공부해보고 싶은 분야를 찾고 귀국하였다. 24살인 내가 부끄러워 지는 순간이었다.

보일에 관련된 책을 찾기가 힘들었다. 인터넷으로 여러 가지를 검색하여 전부 읽어본 후에 썼다. '화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분이고 너무 훌륭한 삶을 살다 돌아 가셨는데 그 분의 업적이 널리 알려진 것 같진 않았다. 나는 과학적인 업적보다는 그 분의 성품을 더 높이 보게 된 계기가 되었는데 그런 것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없어서 아쉬웠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사람들은 방탕하거나 사치를 부리기 쉬운데 보일은 그러지 않고 학문에 기여를 하고 제자들, 나아가서 후손들에게 과학적, 화학적인 기초를 재정립 해주는 데 힘썼다는 점이 우리들이 배울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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