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18일 화요일

21세기 지식기반사회가 과거에 비해 달라진점과 이유를 쓰시오 업로드 -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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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지식기반사회가 과거에 비해 달라진점과 이유를 쓰시오 업로드

21세기 지식기반사회가 과거에 비해 달라진점과 이유를 쓰시오

21세기 지식기반사회가 과거에 비해 달라진점과 이유를 쓰시오

21세기 지식기반사회가 과거에 비해 달라진 점과 이유를 쓰시오

Ⅰ. 서론

"아들, 괜찮은 땅이 있는데, 거기는 무조건 사." 그 말을 듣던, 아들은 도리어 아버지께 폰을 보여주며, 말했다. "그것보다 여기 파워블로그를 매입하는 것이 더 마진이 남아요." 두 부자의 이야기는 흥미롭게도, 우리 현 지식기반사회를 정확히 집고 있다. 현재까지는 부동산 재테크가 적절할 것이다. 현재까지는 말이다. 앞으로는 무형적인 기반가치가 유형적인 기반가치를 뒤집게 될 것이다. 이미 그러한 상황은 도래했다.

과거의 지식기반사회는 어떠하였을까 흥미롭게도 동, 서양을 막론하고, 모두 같은 결과로 취합된다. 특정계층의 정보독점. 절대 하위 그룹이나 동등한 그룹에 정보를 나누어 주지 않음으로써, 권력을 유지시키고, 통제를 해왔다. 그것은 상위계층이 하위계층을 통제하는 한 방법이자, 무기로 진화해왔다. 하지만 시대가 지나고, 하위계층이 "왜 그래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심어지게 되고, 비슷한 시점에 "혁명"들이 일어나게 된다. 이는 기존의 권력을 붕괴를 뜻하는 것과 같고 정보의 독점의 댐이 순식간에 무너진 것과 같다. 하지만, 우리는 동등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가 상위계층이나 하위 계층이 없는가 더 두껍게 되면 되었지, 약해지진 않았다. 그저 그 주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럼 정보사회에서 지식기반은 결국 달라진 것이 없을까

Ⅱ. 본론

산업발전으로써, 우리가 가지는 가장 큰 특혜가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거리다. 자동차의 보급은 더 이상 동물로 의존하거나 직접 사람이 뛰어서 소식을 전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럼 사람들의 인식은 점점 편함에 익숙해져 갔고,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높이를 꿈꾸게 된다. 그러한 꿈들이 모여, 초고층 빌딩이 완성되고, 위성을 쏘아 올리는 계기를 만들게 된다. 그렇게 멀리 나아감으로써, 더 이상 거리는 만남에 제약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프랑스의 친구를 사귀고 싶다면, 지금 당장 페이스북에 친구신청을 넣으면 된다. 그러면 우리는 프랑스의 친구를 얻게 될 것이다. 아주 쉬운 방법으로 수킬로미터 밖의 친구를 사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거리의 제약이 없어짐으로써, 이러한 만남은 또 다른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일전에 재미있는 일화가 있었다. 중국의 한 매체까지 소개 되었으므로, 여러분도 알 수도 있다. 몇 년간 sns에서 만난 아름다운 중국 여성과 드디어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남자는 잠도 자지 못 했고, 수 킬로미터나 떨어진 자신의 이상형을 만날 수 있음에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만나자마자, 남자는 이상형 여자를 죽기 전까지 구타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다행히 주변사람이 막아서 살인까지는 안 갔지만, 충분히 병원신세까지 만들어 버렸다. 경찰에 불려간 그 sns 남자 주인공은 "실물과 sns와 너무 괴리감이 있어 폭력을 행하였다."라고 전하였다. 더 우스운 것은 남자 주인공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점이다. 이처럼 거리가 떨어져 있으나, 결국 실제적인 거리는 멀기 때문에, '익명성'의 가면으로, 이러한 사례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 그러한 '익명성'은 해외에서만 존재하는 것일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전혀 컴퓨터를 안 하는 사람이거나, 익명성으로 거짓을 말하는 사람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례도 굉장히 많다. 자살을 하려는 사람에게 진짜 해보시든가 말 한마디에 그대로 실행을 해 사망하는 경우도 있고, 사람들의 비판 글에 못 이겨 사망 사는 사례도 종종 뉴스에 구설수로 올라오게 된다.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람이 죽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가

여기서 중요하게 집고 넘어 가야하는 것은 우리의 영역성과 확장성은 단순히 거리의 단축 뿐 만 아니라, 우리를 나타내는 하나의 수단 이상으로 자리 잡았다. 과거였다면, 집안 사정이나, 자신의 신체 등 문제가 있다면, 쉬쉬하거나, 혹은 그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전문기관을 찾아가는 경우가 대다수 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어떠한가 결혼문제부터 이혼문제, 자금유통문제 등등 모두 인터넷에 물어 보고, 더 확실한 대답으로 회신해 온다. 이는 궁금한 사람과 해결해주려는 사람과의 욕구가 알맞게 이루어 졌으므로, 가능한 일이다. 이를 통해 아예 전문 사이트를 창설하여, 운영하기도 한다. 그럼 방안에서도 전문가를 만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전문가를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겠는가

신뢰를 가지고 있는 전문 사이트들은 많다. 하지만 그러한 전문 사이트가 20% 일 때, 80%가 비전문 형태를 띠며, 개인 블로그 형식으로 우리에게 정보를 공유해준다. 하지만 그렇게 많이 쏟아지는 정보에는 "개인감정"이 더 많이 들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개인감정이 들어간 문서는 객관적일 수 없고, 전문적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전문적인 딱딱함보다는 비전문적인 흥미에 더 이끌리게 된다. 왜냐하면, 전문적인 내용은 재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사실에 국한된 말만 적혀 있기 때문이다. 이를 활용하여 광고나, 루머가 2차 3차 4차까지 이러지는 것이다. 그럼 그러한 루머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흥미를 끌기 위해서 이다. 흥미를 끌기 위해서는 자신보다 높은 사람을 비판해하기도 한다. 그런데 비판을 하기 위해서는 문제점을 알아야 하는데, 정확히 알고 비판하는 사람은 드물다. 왜냐하면, 자신은 비판을 하려는 것이므로, 판단은 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사람의 호응지수나 비판을 해줬으면 하는 대상에 대해 하는 일종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루머는 계속해서 제작되어 질 수 밖에 없다. 흥미를 즐기려는 사람과 선동하고 싶어 하는 사람과 글을 만들어 내고 싶어 하는 사람과의 수지가 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난으로 시작한 사람들이 작은 장난으로 끝나면 애교로 봐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이용하려는 제3의 세력이 존재한다. 그들은 "댓글 알바"라고 한다.

댓글 알바들이 언제부터 생겨났는지 알 수 없다. 그저 정치적 언론에서 나오는 내용을 긍정적적으로 적거나, 부정적인 비판을 하는 것이다. 초기 대기업회사들도 처음 이 효용가치를 알았기 때문에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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