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9일 목요일

조선 초기의 민간신앙 및 풍수지리 - 레포트대행조선 초기 민간신앙 - 조선 초기 불교 성리학 민간신앙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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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의 민간신앙 및 풍수지리 - 조선 초기 민간신앙 - 조선 초기 불교 성리학 민간신앙 조사

목차

서론 : 조선초기(태조~세종)의 민간신앙과 풍수지리 및 종교 고찰에 대한 의의 및 목표

- 주변국가의 역사왜곡이 심해지는 오늘날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던 세종시대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문화의 정체성 확립 및 자부심을 가지게 한다는 것에 그 의의를 지닌다.

-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민간신앙과 풍수지리는 독자적인 우리의 문화이며, 특히 조선 전기의 구체적 정황을 살펴봄으로써 그것이 독자적으로 발전한 모습을 알 수 있다.

본론

가. 불교, 성리학, 민간신앙이 공존했던 조선 초기

ㄱ. 불교, 성리학 민간신앙은 무엇인가.

ㄴ. 유교가 조선의 건국이념이 되어 불교가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ㄷ. 무학도사와 태조 이성계의 인연으로 인해 회암사 세종에 이르기까지 왕실의 기능을 한다.

ㄹ. 불교와 유교의 현실적 위치 - 정치적 이념으로는 유교가, 사회적․ 문화적 이념으로는 불교가 자리잡고 있다.

ㅁ. 불교와 민간신앙이 어우러져 서낭신앙, 장승신앙 및 기우제가 성행한다.

나. 조선 초기의 민간신앙

ㄱ. 출산과 관련된 민간신앙은 여성에 한하여 임신부터 출산, 양육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금기사항을 만들었다.

ㄴ. 토정비결 및 점과 같은 생활 미신이 서민들 삶에 뿌리 깊게 내려 있어, 정부의 유교관에 의한 억제정책에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ㄷ. 민간신앙 및 미신에도 과학적 진실이 숨겨져 있다.

다. 풍수지리와 정치

ㄱ. 신석기 시대의 배산임수와 신라 말 도선에 의해 중국에서 도입된 풍수지리는 우리나라에 정착되면서 우리나라 독자적인 문화가 되었다.

ㄴ. 풍수지리는 한양천도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ㄷ. 고려 말 문신 이장경의 무덤 터인 서진산은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이라 하여 왕실의 태봉자리가 되었다. 명당에 태반을 묻는 다는 것은 왕조의 왕업 발전을 의미한다. (이장경의 묘는 이장되었음)

ㄹ. 풍수지리는 오늘날에도 묘 풍습, 집 터 선정 등에 많이 활용되고 있다.

결론 : 정치적 이념으로서의 유교의 시대적 요구와 본론 요약 및 제언

- 새로운 왕조의 정당성을 위해 강력한 유교관을 정립시켜야만 했다.

- 그러나 풍수지리와 민간신앙은 우리나라 민족 삶에 깊게 뿌리 내려 있었다.

- 시대적 상황에 맞게 민간신앙과 풍수지리는 변모해 가면서 독자적인 우리나라의 문화가 되었다.

- 우리의 것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예민한 성찰 및 다양한 문화에 대한 관대한 사고가 필요하다.
출처 : 해피레포트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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